부산동별유래 부산진구3

부산동별유래 부산진구3 소개

안녕하세요.
부산 풀싸롱입니다.

오늘은 부산 풀싸롱과 함께 부산진구의 범천동, 부전동, 양정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동별유래 부산진구3

범천동

범천동(凡川洞)은 오늘날의 자성대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강을 동천(東川)이라 한다.
옛날에는 이 강을 풍만강(楓滿江)·보만강(寶滿江)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풍만(豊滿)이라는 음이 변하여 생긴 이름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동천을 범천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범천의 물줄기가 원래 자성대의 서쪽으로 흘러 바다에
유입되었는데, 자성대 부근의 부산진매축 때 두 시내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동천(東川)이란 부산진성(釜山鎭城)의 지성(支城)인 자성대 쪽에서 볼 때 성의 동편을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범천은 증산(甑山)에 인접한 산들이 산세가 험하고 산림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서식하였는데, 호랑이가
이 계곡에서 자주 출몰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따라서 범천은 한자식으로 호천(虎川)이라고도
표기하였다. 따라서 범천동이라는 동명은 범내〔凡川〕에서 유래되어 범내골을 중심으로 그 인근의 지역을 지칭하는 동명이 되었다.
1957년 구제실시로 동구에 편입되었다가, 1959년 시조례에 의해 동구 범일4동을 부산진구에 편입시키면서 범천1,2,3동으로 개칭하였다.
1966년 범천2동이 범천2,4동으로 분동되었고, 1975년 남구의 신설로 범천3동은 남구에 편입되었다가, 1982년 문현5동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범내골마을, 안창마을이 있다.
안창마을은 동구 범일6동과 겹쳐있다.

부전동

부전동(釜田洞)은 조선시대의 경우 동래부 동평면 부현리 (釜峴里)에 속하였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부다대현(釜多大峴)이라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지금의 당감동 즉, 감물리에서 지금의 부암로터리 밑인 고대리로 난 고개라는 설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오늘날의 하마정에서 송상현 동상까지 마비현(馬飛峴)의 별칭이라는 설이다.
이 중에서 부다대현은 부산포에서 다대포로 넘어가기 위해 넘는 고개로 위치상 합당치 못하며, 마비현은 광복 이후까지도 모너머고개 머나머고개로 불리어 왔다. 따라서 부현리의 지명은 감몰리에서 고대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현 당감동 입구인 부암고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에는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가 마치 가마솥 釜 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부현 가마고개 이란 지명이 붙여진 것 같다.
이중 부현고개 아래의 범전리·전포리와 인접하는 곳을 부전이라 이름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1936년 시 구명 정비 때 부전동이란 이름이 쓰여지게 되었고, 1938년
부전동을 부전1,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54년 부전1동에서 부전3동이 분동되었다가, 1959년 부전3동을 부전1동에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마을인 부전리가 있었다.

부산동별유래 부산진구3 양정동

양정동(楊亭洞)은『동래부지(1740)』산천조에는 황령산 아래에서 화지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말하고
있다. 양정동은 『동래부지(1740)』에는 양정리(羊亭里) 라 하였다.
양정(羊亭)이란 정자는 고적조나 루정(樓亭)조에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자(亭子)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지역의 고로들에 의하면, 양정본동 일대에는 수양버들의 실같은 가지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곳을 버들 양(楊)으로 개칭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또 양정은 양지골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이는 양정동에서 황령산을 바라보면 세갈래 능선이 갈라져 나가고 있는데, 왼쪽은 당산능선, 중간은 평전(平田)능선, 우측은 취병장(吹兵場)능선이 뻗어 내리고 있다.
왼쪽 당산능선 아래쪽에 양지곡 골짜기가 있다.
양지는 음지의 응달에 비하여 양달이라 하여 햇빛이 많이 드는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양달은 양지의 음이 높아 한자의 양(羊)으로 표기되고 지(地)는 정자골(亭子谷)이 정자꼴로
읽히는 것으로 보아 정(亭)으로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곳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고사하여 해제된 양정의 이 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으로
추정되어 정자나무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양정이 양지골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을
뒷받침 해준다.
1970년 양정1,2동으로 분동하고, 1979년 양정1동을 양정1,3동으로, 양정2동을 양정2,4동으로 분동하였다. 1995년 양정3동을 양정1동에, 양정4동을 양정2동에 통합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본동마을, 신좌수영마을, 하마정마을이 있었다.

출처 부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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