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별유래 부산진구4

부산동별유래 부산진구4 소개

안녕하세요.
부산 풀싸롱입니다.

오늘은 부산 풀싸롱과 함께 부산진구의 연지동, 전포동, 초읍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동별유래 부산진구4

연지동

연지동(蓮池洞)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이다.
이 못은 조선시대에는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다.
1740년에 간행한『동래부지』에 산천조에 보면,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둘째로 큰 제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지라는 동리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란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하였다.
이는 당시 초읍동에 화지언이란 역사적으로 유래가 오래된 옛 못이 있었는데, 연지동의 못은 그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못이라는 뜻에서 신지언이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시기인 1947년 부산출장소 연지동으로 개칭되었다가, 1957년 연지동과 초읍동을 성지동으로
통합하였다.
1963년 인구증가로 성지동을 다시 초읍동과 연지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마을인 연지리가 있었다.

전포동

전포동(田浦洞)은 서면의 동천이 지금 범일동과 문현동 사이로 흘러 바다로 들고 있다.
그러나 먼 옛날로 올라 갈수록 동천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자리는 서면의 북쪽인 육지쪽으로 올라온
자리였다. 말하자면 바다가 지금의 서면의 육지 깊숙이 들어서 있었는데 홍수 때면 서면 주위의 산에서
쏟아지는 물이 토사를 실어내려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어 갔다.
그렇게 메워진 자리가 갯가가 되고 논밭이 돼 간 것이다. 그 논밭으로는 벼와 보리, 채소들이 재배되었다. 지금은 전포동의 평지는 시가지가 돼 있지만 그때는 갯가의 밭인 밭개였다.
그 밭개가 밭 전(田) 갯 포(浦)의 전포리가 된 것이다.
이 지역의 고로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전포동(田浦洞)의 노막리 또 농막리까지 조수가 들어 배가
많이 정박하였다고 한다.
1949년 전포1,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70년 인구 증가로 전포1동은 전포1,3동으로 분동되었고,
1975년 전포2동은 전포2,4동으로 분동하였다.
1998년 전포2, 4동을 전포2동으로 통합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농막마을, 밭개마을, 부산의용촌,
오수골마을이 있었다.​

부산동별유래 부산진구4 초읍동

초읍동(草邑洞)은 연지동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금정산의 남북으로 통하는 요충지로 북쪽으로
금용산을 등지고, 남으로는 연지를 지나 부산평야로, 동으로는 화지산이 서쪽으로 달려가는 형상의
작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로는 금용산(쇠미산)의 산맥이 뻗어있어 천연의 성벽을 이루는 분지이다. 이곳의 동의 명칭이 초읍으로 된 여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동평현이 생긴 후 읍의 치소(治所)를 물색하기 위해 명사들이 초읍동에 들러 보았는데, 산의 지세가 좋고
지리가 음양에 맞아 이곳을 우선 읍의 치소(治所)로 선정해 놓고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나하여 현 금정구의 두구동으로 가보니 역시 산세가 좋아 두고 보자한 후 현 동래성에 들렀더니 동으로는 학소대와 남으로는 대조포란형(大鳥 卵形)이 서울 장안의 산세와 같으므로 이곳을 읍치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먼저 초한 곳이란 뜻에서 초읍이란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는 호사가들의 입담에 지나지 않고 실제는 새터가 원래의 고을 이름인 것으로 파악된다.
초읍은 초량을 “새뛰”라 부르는 것과 같이 초는 새로 읽히며 읍은 량·탁·벌·성 등의 터로 읽혀 “새터”로
불릴 수 있다.
새터는 새로운 터전, 새로운 자리라는 뜻이다. 즉, 동평현의 치소(治所)가 지금의 당감동 부근이었는데
고려후기 이후 빈번한 왜구들의 침입으로 동평현이 피폐해지자 천연의 요새인 이곳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이란 뜻에서 새터 즉 초읍으로 불렀던 것으로 풀이된다.
초읍동은 조선후기 동래부 서면 초읍리에 속하였고, 1914년 동래군으로 편제되었다.
1936년 행정구역 확장으로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42년 연지동과 함께 성지동으로 통합되었다가, 1962년 초읍동과 연지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초읍리가 있었다.

출처 부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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