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별유래 중구3

부산동별유래 중구3 소개

안녕하세요.
부산 풀싸롱입니다.

오늘은 부산동별유래 중에서 중구의 보수동, 부평동의 동별유래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동별유래 중구3

보수동

보수동(寶水洞)은 보수천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보수천은 부산개항 직후부터 부른 이름이며,
그 이전에는 법수천(法水川)이라고 불렀다.『감동어기전말등록』에는 구초량(舊草梁)의
법수천 동암(東岩) 밖이 곧 왜관 수문의 옆이라 하였고,『순영등록』에는 초량 법수천이라 기록되어 있다.
법수라 함은 불법계에서 중생의 번뇌를 씻어 정하게 한다는 것을 물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며,
중생의 마음속의 때를 씻어주는 물이란 뜻이다. 법수천(法水川)이라는 이름이 어느 때부터 기원하였는지 그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옛날 구덕산에 구덕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었고, 또 18세기 중엽 왜인들의 약탈에 못이겨
그 절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므로 폐사가 되었다는 기록 등을 아울러 생각해 볼 때, 법수천이라는
이름은 이곳 구덕사의 승려들이나 그 불신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법수천은 법수천에서 따온 말로서 불교적 의미를 더욱 구체화하여 법주(法主)와 법왕(法王)이란
뜻으로 윤색된 표현으로 보인다.


근대개항 후 법수천의 법(法)을 보(寶)로 고쳐 보수천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 뜻은 법수와 같은 것이다. 1880년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보수천 상류로부터 대나무통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을 하였다.
그후 1886년 나무통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을 하였으며, 1894년 보수천 상류에 물을 모으는
둑인 집수언(集水堰)을 만들고 자연여과장치를 시공하였다.
이와 아울러 거류지 가까운 곳에 대청배수지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상수도 기원이 되었다.
법정동으로 보수동1,2,3가가 있다. 보수동에는 검정다리 마을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었다.

부평동

부평동(富平洞)은 부민동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되며, 보수천 하구 일대는 갈대밭과
풀밭이어서 예부터 샛디라고 불러왔다.
샛디는 초량이라는 말이다. 당시 보수천 일대의 샛디는 해정리(海汀里, 지금의 초량)까지도 샛디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초량을 신초량이라고 부르자 원래의 초량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구초량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러한 지명은 개항 당시까지도 그대로 존속하였다.


부평동의 부(富)는 부산의 옛 지명인 부산(富山)과 같은 뜻에서 사용한 것이라 하며, 평(平)은「터」라는
뜻으로 샛디의「디」와 통하는 글자로서, 일제시대에는 부평정(富平町)이라고 불렀으며, 광복 이후에
마찌(町)만 동(洞)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이래 우리의 장(場)은 5일장 형태였으나, 1910년 설립된 부평시장은 1915년 부산부에서
관리하였다. 이 시장은 인근 70리까지 세력이 미쳐 조선의 최대 공설시장이었다.
이 시장 왼쪽을 백풍가(白風街)라 불렀다. 이곳을 내왕하는 통상문(通常門)이 있어 항상 백의(白衣)를
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수 운집하여 일일상품을 구입하였는데 백의인의 집합장소라 하여
백풍가라 불렀다. 법정동으로 부평동1,2,3,4가가 있다.

출처 부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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