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별유래 중구2
안녕하세요.
부산 풀싸롱입니다.
오늘은 부산동별유래 중에서 대청동과 동광동의 동별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동별유래 중구2
대청동
대청동(大廳洞)의 유래는 초량왜관(지금의 용두산 부근 약 330,000㎡) 북쪽 담장 밖에 있는 수문너머,
동래부에서 30리 거리에 연향대청이 위치하였다. 연향대청(宴饗大廳)은 일본사신을 맞이하여
동래부사나 부산첨사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연대청(宴大廳)이라 불렀다. 『증정교린지』에 따르면,
연대청은 35간으로서 거기에는 28간의 공수간과 38간의 외대문, 1간 반의 중문, 각 5간씩의 동고 및
서고 등이 있었으며, 내간자의 곡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다. 연대청의 부속건물로는 북문인 연향문과
1간의 내북문이 있었다.
북문은 연향시 왜사(倭使)가 출입하는 곳으로서 동복병장이 지키고 평시에는 봉쇄하였다.
이 연대청 현관에는 유원(柔遠)이란 액자가 붙어 있어서, 연대청은 일명 유원관, 유원루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연원을 가진 연향대청은 현재의 남일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하였으며,
이로써 그 지명을 일제시기부터 대청정(大廳町)으로 불렀으며, 광복 후에도 일본식 지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그대로 대청동(大廳洞)이라 하게 되었다.
법정동으로 대청동1,2,3,4가가 있다. 대청동은 1982년 법정동인 복병동을 대청동에 병합시켰으며,
복병동은 부산지방 기상청이 있는 복병산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동광동
초량왜관의 출입문은 수문(水門)을 비롯하여 수문과 북문이 있었는데, 수문의 통행이 가장 많았다.
이 수문을 비롯하여 재판옥지(裁判屋址), 동향사지(同向寺址) 등이 오늘날의 동광동에 해당한다.
수문은 옛 동광초등학교의 동편에 있었는데 왜관에서 일본인들이 관구(棺柩)를 운반할 때
사용했기 때문에 무상문(無常門)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북문은 대청동의 연혁에서와 같이 평상시에는
늘 열어두고 연향이 있을 때만 사용되었다. 동광동은 초량왜관 시대에 동관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동관은 바로 일본에서 오는 배가 정착하는 곳이며, 왜관의 최고 책임자인 관수(館守)의 집과 거래가
이루어지던 개시대청이 있었던 곳이어서, 일본인조계지가 되자 본정(本町)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광복 이후 일본식 동명 개정에 따라 동관이 있던 자리라는 의미의 동관동으로 고쳐야 옳지만,
발음의 어려움과 이웃한 광복동의 동쪽에 위치 한다하여 동광동(東光洞)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정동으로 동광동1,2,3,4,5가가 있다.
출처 부산시청
부산동별유래 중구2 소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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