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별유래 영도구3

부산동별유래 영도구3 소개

안녕하세요.
부산 풀싸롱입니다.

오늘은 부산 풀싸롱과 함께 부산 영도구의 봉래동, 신선동, 영선동, 청학동의 동별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동별유래 영도구3

봉래동

봉래동(蓬萊洞)의 유래를 살펴보면, 영도는 하나의 큰산으로 되어 있는 섬으로 조봉(祖峯)·자봉(子峯)·
손봉(孫峯)의 세 봉우리가 있다.
이 산의 이름을 일제시대 이후 한때 세칭 고갈산(沽渴山 또는 枯渴山)이라 불러왔다.
절영도진의 첨사로 가장 오래 재임한 임익준(任翊準)이 영도의 지명을 한문식으로 고쳐 지을 때 이곳이야말로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여 산 이름을 봉래산(蓬萊山)이라 명명하였다. 봉래산은 영도의 모든 동이 봉래산 아래에 흩어져 있는데, 봉래산의 주맥(主脈)이 이곳에 닿은 곳이라 하여 봉래동(蓬萊洞)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 한다.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동래부 사하면 영선리에 속했다가, 1905년 영선정 (營繕町)으로 개칭하였고, 1944년 항정(港町)1,2,3,4정목으로 바뀌었다. 1947년 7월 일제식 동명 개정 때 우리의 고유지명인 봉래동1,2,3가로 개칭하였다. 1961년 동명개정 때 봉래동1,2,3가를 봉래1,2,3동으로 개정하였다가 1979년 봉래3동을 봉래3,4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정동으로 봉랭동1,2,3,4,5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나릿가마을이 있었다.

신선동

신선동(新仙洞)에는 언제 때의 묘당(廟堂)인지 알수 없으나 오랫동안 많은 전설이 얽힌 영도의 수호신을
모시는 산제당·하씨당이라는 당집이 있었다.
봄·가을 두번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 당집은 영도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옥성학교 시절까지 울창한 산림사이에 있었으나 학교 부지확장에 따라 훼손되었다.
이 하씨당은 원래 아씨당에서 연유된 것으로 풀이되는데 여자를 주신으로 모신 것이었다.
당의 주인이 여신선인 까닭에 1885년 첨사 임익준이 영도의 지명을 정할 때 새로운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신선이라 지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인 1944년 북서쪽의 개펄을 매립하여 산수정(山手町)이라 불렀으나, 1947년 7월 일본식 동명 개칭 때 신선동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이 봉래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데다 수목이 울창하고 높은 지대라 선인이 살았다고
전하는 선경(仙境)의 지대이며 광복후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뜻에서 동명을 지었다고 한다.
1961년 동명개정 때 신선동1가를 신선1동으로, 신선동2,3가를 신선2동으로 개칭하였다가, 1966년 신선2동을 신선2,3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정동으로 신선동1,2,3가가 있다.

영선동

영선동(瀛仙洞)은 영도에서 제일 먼저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대한제국 건양(建陽) 원년(1896)에 행정체계가 전국 8도에서 13도로 개편될 때 동래부 사하면 영선리란 지명이 제정되었다.
당시의 영선동 영역은 지금의 봉래동·신선동·남항동·대평동 일대로 옛 이름은 나릿가(津)였다.
1885년 절영도 첨사 임익준이 영도의 동명을 새로이 지을 때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동해에 잇는
전설상의 섬 이름인 영주(瀛州)의 이름을 따서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기슭이라는
뜻에서 영선(瀛仙)이라 지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인 1925년에는 이곳을 일본쪽을 바라보기에 좋은 곳이라 하여 어영정(御影町)1,2,3정목(丁目)이라 하였다.
광복 이후 1947년 7월 일제식 동명 개정 때 우리의 지명인 영선동1,2,3,4가란 이름을 다시 찾게되었다. 1965년 영선동1,2가를 영선1동으로, 영선동3,4가를 영선2동으로 개칭, 1982년 신선2동 일부를 영선1동으로 편입시켰다.
자연마을로는 나릿가마을, 성발축마을, 제2송도마을이 있었다. 법정동으로 영선동1,2,3,4가가 있다.

부산동별유래 영도구3 청학동

청학동(靑鶴洞)은 선사시대의 패총(조개무지)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예부터 조상들의 주거지였음이
분명하다.
임진왜란 이후 영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한말에는 6호의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청학동의 동명은 이곳이 숲이 울창하여 청청(靑靑)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 지대가 학맥설(鶴脈說)에 따라 해운대에서 영도를 바라보면, 마치 학(鶴)이 남쪽으로 날으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청학동이란 동명을 짓게되었다고 한다.
청학동이라 하기 이전에는 지금의 청학동시장과 부산은행지점 바닷가 일원을 조내기라 불러왔다.
조내기 일대는 어장으로 많은 생선이 잡혔다고 한다.
어장의 개발에 따라 뚜겁바구, 넉섬방우, 덤버들 등의 해안지명이 생겨나고, 이후 인가가 들어섬에 따라
조내기라는 지명도 얻게되었다.
조내기란 지명의 유래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이곳의 바닷가는 낮고 개펄이 많아 썰물 때는 물이
군데군데 고여있는 조락(潮落)한 곳이 많아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는 통신사(通信使) 조엄이 일본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이곳에서 처음으로 재배하여 조씨가 고구마를
캐내기 시작하여 조내기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현재까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1903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래부 사중면 청학동이었다가, 1944년 청학동을 청산정(靑山町)으로 개칭하였다.
광복 이후 1947년 7월 일제식 동명개칭 때 청학동으로 바꾸었고, 1970년 청학1,2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광암마을, 석탄고마을, 일산봉마을, 조락마을, 청학마을이 있었다.

출처 부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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