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별유래 영도구1

부산동별유래 영도구1 소개

안녕하세요.

부산 풀싸롱입니다.

오늘은 부산 풀싸롱과 함께 부산 영도구 연혁, 남항동의 동명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동별유래 영도구1

영도구 연혁

영도는 부산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인 동삼동․아치섬․영선동 등의 조개무지(패총)로 유명한 곳이다.
이들 유적지에서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석기 등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그 시기는 대략 6000~
5000전의 신석기시대에 해당된다.
이로 보아 영도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에도
영도지역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에는 변진 12국중 거칠산국(居漆山國)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삼국․통일신라

삼국․통일신라 때는 신라초기 군현개편으로 거칠산국은 거칠산군으로 편제하였고, 또 일부 지역에는
대증현에 소속되어 신라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통일신라시기의 영도는『삼국사기』권34, 지리1 동평현조에 의하면, “대증현은 신라 경덕왕 때 동평현으로 개칭되었다”고 하고 있으므로 동평현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절영도(絶影島)란 지명은『동래부지(1740)』에 의하면, 이곳은 태종무열왕이 활을 쏘던 장소였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말기

통일신라 말기에는 후백제의 왕이었던 견훤의 지배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신증동국여지승람(1530)』권23, 동래현 산천조을 보면, “절영도는 동평현의 남쪽 8리 지점에 있는데, 목장이 있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 목장은 명마가 유명하였던 곳으로 절영도란 섬의 이름도 말이 빨리 달려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는 데서 얻어진 이름이다.

한편, 고려 현종 12년(1021) 지방제도의 개편으로 동래군이 동래현으로 강등되어 울주군에 영속되자, 동평현도 양주군의 영속되었다. 영도지역은 고려시대 동평현에 속했다. 그것은『고려사』권57, 지리2 양주조에 의하면, “동평현은 현종 9년에 래속하였다. 절영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조선시대 영도는 계속 동평현의 영역이었는데, 동평현은 태종 5년(1405)에 양주의 속현에서 동래현의 속현이 되었고, 태종 9년에 다시 양주에 속하였다가 세종 10년(1428)에 와서 또 다시 동래현의 속현이 되었다. 따라서 영도는 조선초기 동래현령의 지배를 받은 것으로 보이며, 조선중기부터 동래부사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이후 면리제의 실시로『동래부지(1740)』에 의하면, 동평면을 비롯한 7개 면(읍내면․동면․서면․남촌면․북면․사천면․동평면)이 설치되었는데, 영도는 사천면에 속했다. 그후 사천면은『동래부사례(1868)』에 따르면 부산면․사상면․사하면으로 분할되었는데, 영도지역은 사하면으로 편제되고 이때 영선리가 설치되었다. 이후 12개 면으로 개편되었는데, 영도지역은 사중면에 속하면서, 청학동․상구룡동․하구룡동 등의 행정동이 설치되었다.

한편, 고종 18년(1181)에는 절영도진(絶影島鎭)이 설치되어 1895년 진이 폐지될 때까지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일제는 1910년 조선의 강점과 더불어 동래부에서 부산부를 분리하였는데, 영도는 부산부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었다.

1947년 10월 1일에는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꾸었다. 1949년 8월 15일 부제가 시제로 바뀌면서 부산시로 개칭되었다. 1951년에는 영도출장소가 설치되었고, 그후 1957년 1월 영도구로 승격되었다. 영도구의 관할 동은 대교동․대평동․남항동․신선동․영선동․청학동․봉래동․동삼동 등이 있다.

남항동

남항동(南港洞)의 옛 이름은 석말추(石末湫)였다.
이 지역의 앞바다에는 큰돌이 있었는데 썰물 때는 돌끝〔石末〕이 조금 보였다가, 밀물 때는 보이지
않은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885년 절영도 첨사 임익준(任翊俊)이 영도의 지명을 지을 때 동해는 본래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여 신선과 연관된 이름을 많이 지었다.
이때 석말추는 “신선이 사는 시내가 있다”는 뜻의 영계(瀛溪)로 바꾸어졌다. 1934년 영도대교 개통시
인근 바다를 매립한 뒤 일본식 동명으로 석견정(汐見町)이라 불리었다.

석견이란 “썰물을 본다”라는 뜻인데, 이곳은 남항의 바닷가이므로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 광복이후 1947년 7월 일제식 동명 개칭 때 석견1,2,3정목을 이곳이
어업기지 및 수산관련 기관이 운집해 있고 부산의 남항을 끼고 있다 하여 남항동1,2,3가로 바뀌었다.

1961년 남항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정동으로 남항동1,2,3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개안마을, 서간도골마을, 석말추마을 등이 있었다.

출처 부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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