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유래

부산유래 소개

안녕하세요.
부산 풀싸롱입니다.

오늘은 부산의 유래에 대해 한 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유래

부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02년(태종 2)
1월 28일 『태종실록』에 富山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며, 『경상도지리지(1425)』
『세종실록지리지(1454)』 『경상도속찬지리지(1469)』 등에 “동래부산포(東萊富山浦)”라 하였고,
1471년 편찬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에도 “동래지부산포(東萊之富山浦)”라 하고,
같은 책「삼포왜관도(三浦倭館圖)」에도 “동래현부산포(東萊縣富山浦)”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때의 부산포는 “부자 富”를 사용하였다.

1470년(성종 1년) 12월 15일자의 『성종실록』 에 釜山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데,
1474년 4월 남제(南悌)가 그린「부산포지도」에는 여전히 富山이라 쓰고 있어 이 시기는
富山과 釜山을 혼용하여 쓰여졌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은 부산포(釜山浦)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부산의 지명변천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동국여지승람(1481)』 이 완성된 15세기 말엽부터는
釜山이라는 지명이 일반화 된 것으로 추정된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보면, “釜山은 동평현(오늘날 당감동 지역이
중심지였음)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같이 일렀는데, 그 밑이 곧 부산포(釜山浦)이다.
항거왜호가 있는데 북쪽 현에서 거리가 21리다.”라고 하여 산 모양이 가마꼴과 같아 부산(釜山)이라고
하였다. 그 후 기록들은 이를 그대로 인용하여 釜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동래부지(1740)』 산천조에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 같이 일렀는데
밑에 부산·개운포 양진(兩鎭)이 있고, 옛날 항거왜호(恒居倭戶)가 있었다.”라고 하였고,
『동래부읍지(1832)』 에도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동국여지승람(1481)』 편찬 이전에는 富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이후 어느 시기에
釜山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 가마꼴과 같이 생겼다는 산은 과연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일까? 1643년(인조 21년)에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건너간 신유의 『해사록』 에 실려 있는「등부산시(登釜山詩)」에
“산 모양이 도톰하여 가마와 같고 성문이 바다에 임하여”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이때 부산진성(釜山鎭城)은 오늘날 동구 좌천동 북쪽의 증산을 둘러싸고 있는 정공단(鄭公壇) 자리에
성문이 있어 성문 바로 아래가 바다와 접해 있었으므로 이 시문(詩文)에 나오는 산은 좌천동의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18세기 중엽에 변박이 그린 「왜관도(倭館圖)」를 보면 이 증산을 점초(点抄)하여 「부산고기(釜山古基)」라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 부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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